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(문단 편집) === 클럽 === 루메니게는 1974년 [[FC 바이에른 뮌헨|바이에른 뮌헨]]에서 데뷔했는데, 당시 뮌헨은 [[프란츠 베켄바워]] - [[게르트 뮐러]] - [[제프 마이어]]를 앞세워 유럽을 제패하던 클럽이었고 루메니게 역시 두번째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팀의 [[UEFA 챔피언스 리그|유러피언컵]] 3연패에 공헌한다.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뮌헨은 적자에 허덕였고 주축이었던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가 이적, 제프 마이어와 [[울리 회네스]]가 교통사고와 부상으로 은퇴하면서 리그에서 10위 밖으로 추락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. 그러나 1978-79 시즌 [[레알 마드리드 CF|레알 마드리드]]에서의 외유를 마치고 분데스리가에 돌아와 있던 [[파울 브라이트너]]가 다시 바이에른에 합류하면서 '브라이트니게' 듀오가 결성된다. 루메니게와 브라이트너는 수많은 골을 합작해냈고, 1979-80 시즌에 루메니게는 리그에서 26골을 넣으면서 득점왕을 차지한다. 이듬해에도 29골을 넣으면서 다시 한 번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바이에른의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끌었다. [[UEFA 챔피언스 리그|유러피언컵]]에서도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[[아스톤 빌라 FC|아스톤빌라]]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. 하지만 루메니게는 유러피언컵 득점왕을 차지했다. 1984-85 시즌 [[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|인테르]]로 이적한 루메니게는 30대 초입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[[세리에 A]]에서 두 시즌 연속으로 18골을 득점하면서 팀의 주 득점원으로 자리잡게 된다.[* 당시 [[세리에 A]]는 우승팀의 시즌 총 득점이 40골 정도로 경기당 득점률이 2.1 내외였던 시기였다. 실제로 1984-85 시즌과 1985-86 시즌 인테르의 시즌 총 득점[* 세리에 A 외에 컵 대회 및 유럽 단위 클럽 대항전]은 각각 74골, 72골이었다. 전형적인 스코어러도 아닌 30대 초입의 선수가 팀 득점의 25% 정도를 혼자 만들어 냈다는 점은 루메니게의 클래스를 잘 보여준다.] 다만 1986-87 시즌에는 노쇠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폼이 많이 떨어졌고, 시즌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적을 감행했다. 이후 [[스위스 슈퍼 리그|스위스 리그]]의 [[세르베트 FC]]에서 두 시즌을 뛰고 한차례 득점왕을 차지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